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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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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얼굴에서 빛이 나네
작성자 내원사 등록일 2010-01-06
첨부파일 조회수 4413

행자들이 돌아오는 날,

통도사 교무국장 스님의 전화를 받았다.

“나이 어린 행자 하나가 벌점이 많아서 퇴방을 못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지요?”

우리 교무스님 왈, “어떻게 하긴요, 스님께서 책임지고 데리고 나오셔야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우리는 둘러 앉아 누구일까,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교무국장 스님의 농담이었던 걸 알고 가슴 쓸어내리긴 했지만 잠시 아찔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행자들이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왔다.

종무소로 들어오는데 벌써 2명은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2달 쯤 전에 본사 교육 4박 5일이 끝나고 데리러 갔더니

멀리서 우리를 보고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엉,,엉,, 엉,,'

하며 울던 행자님들이 제법 의젓해져 돌아온 것이다.

그동안 많은 행자들을 겪어 봤지만

당시 그렇게 심하게 오열(?)하는 애들은 처음 봐서

뭔 일이 있었나 싶어 오히려 눈치를 보며

감싸 안고만 있었는데,

새스님들 하는 말,

"스님, 보고 싶었어요. 엉엉어...."

참 나.

"누가 죽었어, 왜 그래요?"

"통도사 스님들 나빠요, 맨날 야단만 치고,....."

"왜 야단 맞았는데?"

"줄 안 맞췄다고 야단치구요, 떠든다고 야단치구요, 웃는다고 야단치구요, 안행 안 한다고 야단치구요...."

"야단 맞을 만 하구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아니, 통도사까지 가서 떠들고 웃었어요? 우리 같으면 눈물 쏙 빼게 호되게 야단쳤을 텐데. 우리보다 더 무서웠나?"

"아뇨, 무섭진 않았는데요, 비아냥거렸어요. 엉 엉 엉. 그래서 어떻게 스님이 될 거냐고요. 엉 엉 엉. 통도사 스님들 나빠요."

"통도사 스님들께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와야겠다. 행자님들 우리한테 그렇게 걱정 들을 땐 왜 야단 맞는지 하나도 모르더니만 통도사 와서는 뭐가 잘 못 됐는지 확실히 알게 됐네. "

무표정한 행자 둘을 데리고 가던 석남사 교무스님 하시는 말씀.

"내원사는 행자들한테 얼마나 잘 해 주길래 고작 4박 5일 나와 있었다고 대성통곡을 해요?"

내원사에서 교육을 잘 못 시키는 건지, 요새 아이들이 감수성이 특히나 예민한 건지.....

"조용히 해요. 창피하다. 그만 울어!"

그렇게 돌아와서 스님들께 인사할 때마다 한바탕 눈물 바람 하던 새스님들을

그후부턴 “그렇게 머트러우면 또 통도사에 보낼 거예요.”라고 심심찮게 놀렸는데....

어느 새 이제 행자 교육을 마치고 계를 받고 와서 저렇게 밝은 모습으로 앉아 있다.


소감이 어떠냐고 주지스님께서 물어보시자,

기다렸다는 듯이 열 아홉살들이 제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갖가지 일화들을 들려준다. 나름 자신들도 계를 받고 온 것이 뿌듯한 것 같다.

“갈마 하는데, 어떤 스님께서 주지스님 법명이 어떻게 되느냐고 해서 ‘송자 혜자(^.^!)입니다.’라고 해서 걱정 들었어요.”

“남행자들은 퇴방고사에서 17명인가 떨어졌다는데 우리는 하나도 안 떨어졌어요.”

“돌바닥에서 3보 1배를 하는데요, 무릎에서 피가 나는데도 그냥 했어요.”

자칭 타칭 행자방의 계모였던 30대의 행자가 씩 웃더니,

“00행자가 고의 내리고 무릎에서 피 난다고 대성통곡하는데 입승스님 보시고 그 다음부터는 19살 행자를 입에 달고 사셨대요.”

“19살짜리들 세 명이 쪼로록이 앉아서 발우 펴면서 장난 치다가 입승스님한테 걱정도 자주 들었어요.”

삼보일배 하면서 무릎 까지는 거야 다반사인데, 이놈은 이마에까지 훈장을 달고 왔다.


무릎 좀 보자니까, 제법 진지하게 보여준다.

행자들 중에서 가장 행동이 거칠어서 시자를 유임시켜 가면서까지 담금질을 했는데도 아직 그 습을 벗어버리기엔 역부족인가 보다.

분명 절 할 때마다 퍽퍽 하며 무릎을 바닥에 날렸을 테고, 뻗치는 신심에 이마를 바닥에 콩콩 찧어댔을 것이다.

진짜 신심은 이마나 무릎에 난 생채기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가슴 속에 번뇌를 하나씩 지워 가면서 생겨나는 골 깊은 상처들을 다시 부처님 말씀과 뜻으로 메워가며 신심이 솟아난다는 것을 이 어린 스님들은 언제쯤이나 알게 될까.

내가 스님이 되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스님이 되면 부처님 말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어른 스님들이 집에 가라카는데, 정말 가야 되는 걸까,,,,,, 등등

행자 교육원 입교 전에는 부쩍 이런 고민으로 어두웠던 행자들이 이렇게 빛을 발하며 온 걸 보니 우리 불교계의 미래도 생각보다는 암울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새 스님들,

달마가 갈대 타고 장강을 건넜던 이유를 언제나 알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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