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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및 안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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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돈오와 점수
작성자 내원사 등록일 2012-06-23
첨부파일 조회수 2481

" 스님께서 말씀한 견성(見性)이 참다운 견성이라면, 이는 곧 성인입니다. 마땅히

신통변화를 나타내어 남보다 다른 점이 있어야 할 터인데, 왜 요즘 마음을 닦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신통변화를 나타내는 이가 없습니까? "

 

그대는 함부로 미친 소리를 하지 말라. 삿된 것과 바른 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그는

미혹하고 뒤바뀐 사람이다. 요즘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입으로는 진리를 말하면서,

마음은 퇴굴심을 내어 도리어 깜냥이 못된다고 여기는 잘못에 떨어져 모두 그대와

같은 의심을 한다. 도를 배우면서 선후(先後)를 알지 못하고, 이치를 말하면서

본말(本末)을 분간하지 못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지 진실한 수행이라 할 수 없다.

자기만 그르칠 뿐 아니라 남까지 그르치는 것이니 어찌 삼가지 않을 것인가?

무릇 도에 들어가는 데는 그 문이 많지만 요약해서 말하면 돈오(頓悟, 단박에 깨달음)와

점수(漸修, 차츰 닦음)의 두 문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돈오돈수가 최상의 근기를 가진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 하나, 과거를 미루어 보면, 이미 여러 생애동안 깨달음을

의지하여 닦아 차츰 익혀오다가 금생에 이르러 즉시 깨달아 단박에 모두 마친 것이니,

실제로 말하면 그것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先悟後修) 기틀이다.

그러므로 이 돈오와 점수의 두 문은 모든 성인들의 길이다. 과거의 모든 성인은 누구나

먼저 깨닫고 뒤에 닦았으며, 그 닦음을 의지하여 증득하지 않은 분이 없다. 그러므로

이른바 신통변화는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차츰 익혀야 나타나는 것이요, 깨달을 때에

곧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경에 이르기를 ' 이치로는 돈오이므로 깨달음과 동시에 번뇌를 녹이려니와 실제로는

단박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따라 없어진다.' 고 하였다.

그러므로 규봉스님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이치를 깊이 밝혀 이르기를

' 언 못이 온전히 물인 줄은 알지만 햇볕을 빌려 녹이고, 범부가 곧 부처인 줄은

 깨달았지만 법의 힘을 빌려 익히고 닦는다. 얼음이 녹아 물이 흥건히 흘러야 물을 대고

 씻는 공덕을 나타내며, 망념이 사라져 마음이 신령하게 통해야 신통과 광명의 작용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이로써 실제에 있어서 신통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차츰 익혀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물며 실제에 있어서의 신통은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는 오히려 요망하고 괴이한 일이며, 또한 성인에게 있어서도 하찮은 일이니,

비록 그것을 나타나더라도 요긴히 여겨 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요즘 어리석은 무리들은 망령되이 말하기를 ' 한 생각 깨달으면 곧 한량없는

미묘한 작용과 신통 변화가 따라서 나타난다.' 고 한다. 만약 이렇게 이해한다면, 그것은

이른바 선후를 알지 못하고 본말을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후와 본말을 알지 못하고

서 부처의 도를 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모난 나무를 가져다 둥근 구멍에 맞추려는

것과 같으니,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 보조스님의 수심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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