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문 및 안거

H > 선해일륜 > 법문 및 안거

제목 무염국사의 無舌土論
작성자 내원사 등록일 2012-11-07
첨부파일 조회수 2495

어떤 이가 물었다

"혓바닥이 있느니(有舌) 혓바닥이 없느니(無舌)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무염이 답하였다.

- 앙산이 이르기를 '혓바닥이 있는 땅(有舌土)은 곧 부처의 땅이다. 그러므로 기틀을 따르는 문이다.

 혓바닥이 없는 땅(無舌土)은 곧 선(禪)이다. 그러므로 바로 전하는 문이다.' 라고 하였다.

" 어떤 것이 기틀에 따르는 문입니까?"

- 선지식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눈알을 굴리면서 법을 보이는 것조차 모두 기틀에 따르는 문이므로

   혓바닥이 있거늘 하물며 언어이겠는가?

" 어떤 것이 혓바닥이 없는 땅입니까?"

- 참선을 하는 근기가 바로 이것이니, 여기에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 그렇다면 어찌하여 옛스님이 말씀하기를 ' 스승과 제자가 서로 전하였다'고 하였습니까?"

- 장경이 말씀하기를 ' 비유하건대 허공이 형상 없음으로써 형상을 삼고 하염없음으로써 작용을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을 전하는 이도 그와 같아서 전함이 없음으로써 전함을 삼으므로, 전하되 전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하였다.

" 혓바닥이 없는 땅에는 교화를 할 사람도 없고 교화를 받을 사람도 없다는 것이, 여래의 깨달은 마음속에는

교화를 할 사람도 없고 교화를 받을 사람도 없다는 교문(敎門)의 주장과 무슨 구별이 있습니까?"

- 교문의 궁극은 여래의 깨달은 마음이니 이를 해인정(海印定)이라 한다. 세가지 세간이 이 법인(法印)에

   나타나되 길이 알음알이가 없으나 그래도 세 가지 세간의 자취가 있다. 그러나 조사가 대대로 전한

   법이란 한가한 도인의 마음속에서 길이 깨끗하다거니 더럽다거니 하는 두 가지의 잡초가 자라나지

   아니하므로 세가지 세간의 풀밭이 거칠어지지 아니하며 또한 드나드는 자취도 없다. 이런 까닭에 교문의

   주장과는 다르다. 깨끗한 것은 진여니 해탈이니 하는 법이요, 더러운 것은 생사니 번뇌니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옛스님이 말씀하기를 ' 수행하는 사람의 마음의 근원은 깊은 물과 같아서 깨끗하다거니 더럽다

   거니 하는 두 가지의 잡초가 길이 자라나지 않는다.' 고 하였다. 또 부처의 땅은 전에 정혜(定慧)의 옷을

   입고 등불 속에 들어갔다가 이제 다시 정혜의 옷을 벗어 버리고 현묘한 땅에 서니, 자취가 남아 있다.

   그러나 조사의 땅은 본래 입을 것도 벗을 것도 없어서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으므로 부처님의 땅(敎門만을

 의지한)과 크게 다르다. "

다음글 道란 (1) - 마음이란
이전글 보리달마사행론 中 - 五種心識分異門
맨위로